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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미

정종미는 오랫동안 전통 재료의 물성을 연구하여 산업혁명 이전의 색채를 복원하고 현대화했다. 특히 고려불화의 채색기법을 재해석하여 현대 채색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 <어부사시사>를 선보인다. 제목은 윤선도의 시조에서 빌려온 것으로, 작가는 한시가 높이 평가받던 시기에 한글로 쓰인 아름다운 시조를 남긴 그의 태도에 주목하였다. 윤선도가 머물렀던 보길도라는 역사적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인 서촌의 청백당과 교차한다. 작가는 윤선도의 자연 교감의 정신을 자신의 색채언어로 재구성하며 그동안 천착해온 기법을 화면에 투영한다. 그는 풍경을 하늘과 바다, 대기의 흐름이 어우러진 하나의 전체로서 감성 너머에 새길 뿐,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작업은 재료라는 날실과 작가라는 씨실이 일대일로 엮이는 과정이다. 그는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자연 재료에 감응하며, 재료와 협업하여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전시장에는 일 년을 썩혀서 만든 밀풀로 모시를 화판에 붙이고 서른 번 정도의 채색층을 쌓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이 입체적으로 제시된다. 자연에서 얻은 물질과 수행적 작업 과정은 이렇게 자연과 인간이 맺어 온 또 하나의 연을 보여준다.